황비홍 4: 왕자지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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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900년, 서구열강들은 중국대륙의 이권을 위해 청나라 정부에 포화외교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에 각지의 주민들은 외국인을 상대로 시비를 걸며 반란을 일으켰고, 그중 ‘홍등조(紅燈照)’ 같은 지역에서는 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서구열강은 외국에서 고수를 불러들여, 중국인 고유의 시합인 ‘사왕쟁패’에 참가시켜 중국인의 기를 꺾으려 한다. 조정에서는 황비홍을 데려오라 명한다. 그러나 황비홍은, 양이모를 돕기 위해 광동에 가 있었다. 그때 우연히 양인들을 돕게 된다. 뒤늦게 출동한 독일부대는 황비홍과 홍동 자매단의 묘낭자를 오해하여 체포한다. 위험한 그들은 독일 신부 토마스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나게 되고, 묘낭자는 황비홍이 매국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묘낭자의 마음 속에는 어느새 황비홍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황비홍은 뒤늦게 사왕쟁패가 열리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시합은 시작되었고, 청나라 대표 타오 장군은 양인 팀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시합은 끝난 것이다. 분노한 황비홍은 그들에게 사왕쟁패를 한번 더 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본 군중들과 홍등 자매단이 양인들을 학살한다. 그런 와중에 토마스 신부와 묘낭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되고, 황비홍은 분노할대로 분노하게 된다. 드디어 사왕쟁패의 재시합이 열리게 되고, 황비홍은 계략과 술수를 써대는 양인들을 굴복시킨다. 중국인들의 환성 속에서 우승의 깃발을 든 황비홍이었지만 서구열강은 이미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