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범의 흉터 무더위가 한창인 2004년 8월 8일. 서울의 한 빌라에 할머니가 혼자 어린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오후 2시경. 손자가 낮잠에 든 사이 화장실에 다녀온 할머니는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 적 없는 공포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화장실 문 앞에 정체불명의 낯선 남자가 할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 놀라 비명을 지르는 할머니를 향해, 남자는 곧바로 커다란 회칼을 들이밀며 이런 말을 건넨다. “할머니... 나 누군지 알지?”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할머니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남자의 정체는 두 명을 칼로 잔인하게 찔려 살해 한 살인 용의자로, 며칠 전 우연히 할머니가 본 수배 전단지 속 그 얼굴이었던 것!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할머니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옆 방에는 손자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든 할머니는 결심한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침착하게 모면해야겠다고.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질범 이 씨의 사건은 8일 전, 한 커피숍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이 씨는 여자친구에게 폭행을 행사한 죄목으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여자친구의 신고를 받고 이 씨 검거를 위해 출동한 형사는 두 명. 서울 서부서의 강력반 소속 형사인 심재호 경사와 이재현 순경이다. 두 사람은 여자친구가 이 씨를 만나기로 했다는 신촌역 인근의 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심형사는 현장에 나타난 이 씨를 향해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그때였다. 이 씨가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들더니 심형사와 이순경을 향해 느닷없이 칼을 휘둘렀다. 칼에 맞은 두 형사는 필사적으로 이 씨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용의자역시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급소인 왼쪽 가슴을 두 차례 찔린 심형사와 무려 아홉 차례나 등을 찔린 이순경은 결국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 심재호 형사는 어린 두 아이를 둔 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