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지로, 한국의 근대화와 격동기를 지켜봐온 대구. 격동의 시간을 보내오며 옛 모습은 많이 지워졌지만, 따뜻한 고향의 느낌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는 오래된 기억의 보물창고이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의 스물여덟 번째 여정은 배우 김영철의 고향이기도 한 ‘대구’를 찾아간다.
대구역 바로 앞에는 대구의 명물시장, 번개시장이 있다.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을 운송하던 열차의 출, 도착 시간에 맞춰 번개처럼 반짝 열렸다 해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뻥튀기 집들이 시장 초입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이 시장엔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뻥튀기 사장님을 만나볼 수 있다. 40년간 번개시장이 변화해오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봐온 뻥튀기 기계와 뻥튀기 사장님. 좌판으로 시작된 옛 시절의 시장은 이젠 전국에서 찾아오는 명물시장이 됐지만, 뭐든지 튀겨준다는 가게의 철칙과 2천 원의 공임은 옛 시절 그대로다. 대구에서 태어난 배우 김영철에겐 잊고 있던 고향의 기억이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생생히 살아나는 것만 같다.
대구역이 보이는 골목을 따라 칠성동으로 향하는 길. 100년의 세월이 박제된 듯 외관만으로도 연륜이 느껴지는 집 하나를 발견했다. 시집 와 칠남매를 낳아 기른 오래된 집을 여전히 지키며 살고 계신 어머니는 적적한 시간을 채우고자 일흔 살에 시작한 서예 작품을 집 곳곳에 빼곡히 전시해두었다. 이층 벽에 가득한 어머니의 글씨들을 살펴보다가 배우 김영철은 문득 대구 칠성동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이 계셨던 그 집에 다시 온 것 같은 느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칠성동의 또 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오래된 중국집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1970년대 문을 연 오래된 중국집은 지금까지도 한 자리를 지키며 옛 모습 그대로 손님들을 맞고 있다. 아버지의 고되고 치열했던 젊은 시절만은 물려받고 싶지 않아 번듯한 기업에 취직해 칠성동을 멀리 떠났던 장남은, 날로 힘겨워하는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어 결국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고 이젠 사명감으로 요리를 한다. 아직도 석유풍로로 불을 때는 옛날식 화덕과 억겁의 시간을 버텨온 듯한 닳고 닳은 나무 도마는 아버지의 고집과 긴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다. 배우 김영철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옛날식 볶음밥을 먹으며 추억의 맛에 잠겨본다.
한편, 대구에는 5개의 ‘근대화 골목 여행길’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과 민족운동가 고택 등이 있어 대구의 근대문화를 가장 잘 느껴볼 수 있는 2코스를 배우 김영철이 찾아가 봤다. 일명 ‘90계단’이라 불리는 ‘3.1만세운동길’ 계단은 섭씨 30도 이상이 되면 계단 옆 벽에서 분사되는 스프링클러의 시원한 물안개를 맞으며 잠시 무더위를 식히고 갈 수 있어 관광객들 사이에 소문난 도심 속 피서지가 되었다. 계단 위로는 ‘대구의 몽마르트르’라 불리는 청라언덕이 자리하고 있다. ‘푸른 담쟁이’를 뜻하는 청라 언덕은 1899년 우리나라에 서양 의술을 들여온 미국 선교사들이 유난히도 더운 대구의 여름을 나기 위해, 미국에서 가져온 담쟁이를 집 외벽 옆에 심어 건물마다 담쟁이가 아름답게 벽을 덮은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가곡 '동무 생각'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청라언덕을 내려오면 대구의 명물 골목 중에서도 오랜 전통의 노포들이 많은 ‘진골목’으로 이어지는데, 배우 김영철은 그 골목 안에서 6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미도다방을 만났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주인이 맞이하여 들어간 미도다방은 직접 끓이는 쌍화차에 신선한 달걀노른자를 올려 정성스럽게 손님을 대접한다. 차와 곁들여 나오는 추억의 과자가 달콤 쌉쌀한 쌍화차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외국인 손님들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한편, 조선 시대 경상도 대구도호부에 있었던 대구읍성은 임진왜란 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으나, 1906년 친일파 박중양에 의해 불법 철거되었다. 이 대구읍성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나누어졌다. 현재 모형으로만 남아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대구읍성을 둘러본 뒤 김영철이 발길을 옮긴 곳은 동성로와 이어지는 교동 귀금속 골목. 손님에게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하고, 한 돈짜리 황금 복 돼지 대신 황금 USB, 모기 등의 기발한 황금제품을 팔고 있는 귀금속 가게를 둘러보며 김영철은 전통적인 귀금속 골목이 변화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시도하는 트렌드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교동 귀금속 골목 외에도 동성로, 북성로 일대는 양말 골목을 비롯하여 오토바이 골목, 공구 골목, 수건 골목, 안경 골목 등 다양한 골목들이 발달돼 있어, ‘골목도시 대구’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골목 곳곳을 걷다 보니 특이한 시장이 또 눈에 띈다. ‘도깨비시장’이라 불리는, 없는 게 없는 시장이다. 6.25 이후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상권을 형성하면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시장으로, 미로처럼 이어지는 도깨비시장 안에는 손톱깎이에서부터 염색약, 치약, 사탕, 양말, 손수건, 부채, 영양제, 호랑이기름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상 가게들이 즐비하다. 손님이 원하면 어느 곳에서든 물건을 구해온다는 만물상의 사장님. 그곳에서 배우 김영철이 구입한 건 손쉽게 뭉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는 싸고도 간편한 마사지 롤러. 물건 구경하는 재미가 사는 재미보다 더 큰 도깨비시장에서 배우 김영철은 한참을 머물렀다는 후문이다.
한편, 시장에 오면 빠질 수 없는 먹거리, 대구의 명물 납작만두를 맛보는 배우 김영철. 6.25 한국전쟁 당시 고향음식을 그리워하던 북한 피난민들이 당면과 부추만 넣고 납작하게 만두흉내만 내 빚었다 해서 ‘납작만두’라 불렸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 고향을 향한 향수를 달래주던 눈물의 납작만두는, 먹을 것들로 넘쳐나는 풍요로운 오늘날까지도 대구 10미(味)로 꼽히며 추억을 소환해주는 별미가 되고 있다.
대구 시내 곳곳을 다니며 오래된 기억의 보물창고를 차곡차곡 꺼내어본 배우 김영철은 한 하천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대구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생태하천 ‘신천’에 긴 부리를 뽐내는 고고한 자태의 백로가 보인다. 다가가 보니 물속에는 잉어가 가득 노닐고 있고, 자라가 헤엄쳐 다닌다. 도심 속 오아시스, 신천을 거닐며 어린 시절 하천에서 놀던 추억에 떠올리는 사이, 대구의 하늘엔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한다. 이 시간쯤이면 저녁을 먹으라며 자신을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배우 김영철은 이내 발걸음을 옮긴다.
다시 찾아간 곳은 아침에 만난 어머니가 계시는 칠성동 오래된 옛 집. 김영철은 시장에서 산 소소한 선물들을 꺼내 어머니에게 전했고, 어머니는 귀한 손님 그냥 보낼 수 없어 정성껏 차린 저녁밥으로 보답을 한다.